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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는 풍경 양구

meiser 2011. 7. 14. 19:34

꼭꼭 숨어있던 ‘좁고도 먼 땅’…‘자연의 냄새’에 흠뻑 취하다
때묻지 않는 풍경 양구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7-13 14:46 요즘페이스북구글트위터미투데이싸이월드 공감
▲ 대암산 자락 해발 1280m의 고지에 자리잡은 고층습원 ‘용늪’에 삿갓사초가 물결치고 있다. 연중 170일 이상 안개에 휩싸이고 5개월 이상이 영하에 머무는, 인간에게는 혹독한 자연환경이 다른 생명에게는 축복이 되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아직 이곳에 발을 디딜 수 없지만, 내년 연말쯤 탐방로가 조성되면 부분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 파로호에 나무덱을 놓아 조성한 인공 습지 산책로. 요즘 같은 장마철, 구름이 산자락에 걸리면 마치 수묵화 속을 걷는 듯하다.
# 긴장과 자연의 냄새를 동시에 맡을 수 있는 곳…두타연

강원 양구 땅에 들어서면 두 가지 냄새를 동시에 맡게 된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긴장의 냄새’다. 양구 땅을 달리다 보면 저속의 군용트럭과 지프들이 도로를 자주 막아서고, 위장크림을 바르고 완전군장을 한 병사들과도 마주친다. 산자락 길옆 철조망에 ‘지뢰’라 써붙인 삼각형 붉은 팻말도 긴장을 더해준다. 도솔산, 대우산, 백선산, 가칠봉…. 양구를 둘러친 산자락이라면 어디든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다.

양구에서 느끼는 또 다른 냄새라면 바로 손대지 않은 숲이 뿜어내는 ‘자연의 냄새’다. 양구 땅에는 어디든 반세기 넘도록 인간이 간섭하지 않은 울울창창한 자연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 겹겹이 차단돼 인적이 끊긴 숲은 저 홀로 깊어지고 짙어졌다. 때묻지 않은 자연 중에서 특히 감회를 더해주는 것이 계곡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오는 ‘물’이다. 금단의 땅 저 위쪽에서 흘러내린 물은 어느 숲과 어느 골짜기를 돌아왔을까. 어디서 첫물이 만들어졌으며 누구의 손을 적시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일까. 통제도, 경계도 없이 흘러내리는 물길은 남과 북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양구에서 그 두 가지 냄새를 함께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너머 두타연이다. ‘두타’란 이름은 1000년 전쯤 인근에 번성했던 절집 ‘두타사’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두타란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일체의 욕망과 집착을 버린 수행’을 뜻한다. 두타연은 6·25전쟁 휴전 이후 50여년 만인 지난 2003년부터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다. ‘제한적 개방’이라고는 했지만, ‘개방’보다는 ‘제한적’이라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방됐다. 사흘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개별적인 출입도 여전히 통제되지만, 누구든 기한 내 예약만 하면 문화해설사와 동행해 단체로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군인들이 지키고 선 방산면 고방산리 민통선 통제소를 통과해 길 양옆 지뢰표지를 단 철조망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두타연을 향하자면, 누구나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깊은 상흔을 떠올리는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두타연은 그러나 전쟁이나 분단의 이야기를 다 지운다 해도 풍광만으로도 빼어나다. 비무장지대(DMZ)의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바위골을 힘차게 휘감다가 검푸른 물웅덩이로 와르르 쏟아지는 폭포의 풍광은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이즈음에는 특히 긴 장마로 물이 불어 폭포의 위용이 대단하다. 두타연 앞 주차장까지는 차로 들어야 하지만, 두타연 주변에 갖춰진 2㎞ 남짓의 산책로는 차분하게 걸어볼 수 있다. 두타연 아래 출렁다리로 물길을 건너 버드나무, 오리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신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관광객들에게 주어진 1시간 남짓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 그곳에서 깨진 것은 더위일까 욕망일까…파서탕

DMZ 내의 가칠봉(1242)에서 발원한 수입천은 두타연을 지나서 송현리, 장평리, 금악리를 거쳐 오미리 쪽으로 흘러 파로호로 담긴다. 수입천은 파로호에 담기기 전에 오미리쯤에서 제법 큰 소(沼)를 만드는데 이름하여 ‘파서탕(破暑湯)’이다. 이곳은 그 이름만으로도 피서객들을 불러모은다. 승용차로 가기에는 버거운, 제법 거친 비포장 흙길을 3㎞쯤 우당탕거리며 들어가야 당도하는 곳이지만, ‘깨트릴 파(破)’에 ‘더위 서(暑)’란 이름에 이끌려 피서객들이 알음알음 찾아드는 곳이다.

파서탕의 본래 이름은 ‘파승탕(破僧湯)’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수입천의 골짜기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홀로 수도하며 정진하던 스님이 물가에 나왔다가 소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몸을 섞는 바람에 파계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수입천 상류에 있는 두타연이 치열한 구도의 공간이었다면, 그 하류의 파승탕은 ‘욕망과 파계의 공간’인 셈이다. ‘파서탕’이란 이름도 나무랄 데 없지만, 어쩐지 스님의 계율을 한순간에 깨뜨려버린 아찔한 욕망이 떠올려지는 ‘파승탕’이란 이름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파서탕, 혹은 파승탕으로 드는 거친 비포장도로 길 끝은 민가가 막아선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동기생으로 5·16쿠데타에 가담했던 예비역 육군대령인 빈철현(1999년 작고)씨가 1970년대 초반부터 들어와 살던 집이다. 5·16 직후 혁명정부 시절 교통부 장관 격인 연락관 자리까지 올랐던 그가 어쩌다 이렇게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곳에서 반 평생을 칩거했다. 빈씨가 생전에 어찌나 그곳을 좋아했던지 가족들은 빈씨가 작고하자 그의 묘를, 시름시름 앓다 따라 죽은 개의 무덤과 함께 마당 한가운데 썼을 정도다. 지금 그 집은 30년 전쯤 우연히 빈씨의 집으로 찾아들었다가 빈씨와 인연을 맺었다는 이상열(59)씨가 지키고 있다.

파서탕이든, 파승탕이든 빈씨의 집 앞 소(沼)는 그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물굽이가 순해지면서 이뤄진 제법 깊은 소는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물놀이를 하기에도, 고기잡이를 하는 데도 이만한 데가 없다. 그러나 좁은 비포장길은 차량 두세 대만으로도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입구의 오미리 마을쯤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 들어가는 편이 낫다. 수입천을 끼고 있는 울창한 숲길을 걷는 맛도 더없이 좋거니와 꼭 파서탕까지 닿지 않더라도 숲길 곳곳의 수입천변에 한적하게 물놀이를 즐길 곳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 금기의 공간…용늪, 그리고 양의대

그곳은 아직까지 ‘갈 수 없는 곳’이다. 대암산 용늪. 이곳이 통제되는 이유를 대자면 숨이 다 가쁠 정도다. 용늪은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며 습지보호지역이기도 하고, 천연보호구역이면서 생태·경관보전지역이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자 미확인지뢰지대이기도 하다. 이쯤 되니 그곳에 들어가겠다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의한 법률, 습지 보전법, 문화재보호법, 자연환경보전법 등의 그물망을 다 통과해야 한다.

대암산은 강원 양구군와 인제군의 접경지역에 있지만, 용늪의 행정구역은 양구가 아닌 강원 인제군이다. 용늪에 오르는 도로는 양구와 인제 양쪽에 다 나있는데, 인제 쪽이 멀기도 하거니와 비포장의 거친 길인 반면 양구에서 오르는 길은 2년 전 놓인 번듯한 시멘트포장 군사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인제의 것이되 입구는 양구 쪽으로 나있는 셈이다.

용늪의 가치는 우리 땅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고층습원’으로 독특한 생태를 보인다는 데 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그저 생태나 학술적으로만 의미 있는 곳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로 용늪에 가보면 문외한이라도 그 독특한 경관과 훼손되지 않은 생태에 깜짝 놀랄 정도다. 산 아래 쪽에서 안개와 구름이 슬금슬금 밀려왔다가 한순간에 습지를 다 지우면서 지나는 모습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삿갓사초가 온통 물결치는 습지로 내려서면 북한 지역에서 발견된다는 야생화 비로용담을 비롯해 기생꽃, 제비동자꽃 등 갖가지 야생화들이 수줍게 피어 있다.

용늪에서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물 한 방울 흘러들지 않는 산 정상 부근에 어찌 이렇듯 넓은 습지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암산에 습지가 만들어진 이유는 대략 이렇다. 해발 1200m를 넘나드는 대암산에는 자주 구름과 안개가 걸리는데, 그 안개가 좁은 골을 빠져나가면서 정상쯤에 습기를 다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수은주가 섭씨 0도를 밑도는 날이 연중 5개월에 이를 정도여서 이곳에는 죽은 식물과 생물도 썩지 않는다.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것은 ‘이탄층’이라 불리는데, 그렇게 쌓인 두께가 무려 1.8m에 달한단다. 이탄층 아래에서는 4200년 전의 식물의 흔적이 발견됐다. 용늪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지만, 이르면 내년 연말쯤이면 출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제군은 최근 서흥리 뒷골부터 심적골과 용늪을 잇는 18㎞ 구간의 자연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관할 행정부처가 워낙 여럿인 데다가 생태훼손이나 군 주둔 문제까지 걸려 있어 계획대로 탐방로 조성이 이뤄질지는 불분명하다.

양구·화천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먹을 것 묵을 곳

양구 KCP호텔(033-482-7700)이 가장 추천할 만한 숙소. 객실은 50개로 적은 편이지만 한·양식당과 바까지 갖추고 있다. 읍내에 모텔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 군 면회객들을 겨냥해 지은 오래된 것들이어서 시설이 허름한 편이다. 맛집으로는 산나물과 더덕구이를 내는 남원식당(033-481-0804)과 양구산 콩으로 만든 두부요리로 유명한 양구재래식손두부(033-482-4475) 등이 손꼽힌다. 광치령 휴게소 부근의 광치막국수(033-481-4095)도 알아주는 곳이다. 해안면의 정주골(033-481-6777)의 산채정식이나 산채비빔밥을 주문하면 좀 투박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산나물을 맛볼 수 있다. 두타연을 돌아보려면 방문 사흘 전까지 양구군청 관광경제과(033-480-2251)로 신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