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동이야기

단동을 떠나며~~

meiser 2007. 8. 13. 15:36
돌아보면
어찌 달려왔는지도 모른채
이제 단동 생활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참으로 긴 세월이었지만
돌아보면 세월이 그리 빨리 지나 여기까지 왔나 싶습니다

2003년 8월 16일
오랜 기다림 끝의 기대를 품은 채 단동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낯설기만 하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아쉬움으로 자리 잡아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참으로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돈을 주고도 다시는 살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소홀했다는 미안한 마음 하나만 빼고는
그 어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좋은 추억들이었습니다

중국이 좋았고 중국인을 사랑하였고
중국땅을 밟아 살고픈 자그마한 꿈을 이루면서
어설프게만 알았던 중국을 깊고 폭 넓게 알게 되면서부터
개인적으로는 더더욱 정감스러움에 젖어 들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공적으로는 중국이 너무도 싫어졌음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분양받은 우리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입주를 포기하는 기업을 향한
중국측의 무상환수라는 무례함(?)과
외국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당해야 하는 불이익에
그 좋았던 중국이 싫어지기 시작했고

입주기업에 대한 말도 안되는 우격다짐식 압력에 굴복할 수 없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과
우리기업 보호라는 실로 거창한 애국심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중국 공무원들의 한심한 자태와
우리시의 무관심에 종종 맥이 풀리고
거대한 중국앞에 초라할 수밖에 없는
미약한 나의 능력과 무능함을 꾸짖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단동을 떠난다 생각하니
아쉬움과 허전함이 공허한 마음속에 자리잡고
이삿짐을 싸는 이 시점에야 단동을 떠난다는 실감이 나는 현실속에

더 이상 중국인들과의 힘겨루기에는 기력을 잃고
시커멓게 타버린 상처 입은 마음에 휴식을 주고 싶고
그 좋았던 중국에 대한 애정이 더 이상 상처받기 전에
이곳을 잠시(?) 떠난다 생각하니 후련하기도 합니다

참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중국의 수많은 지방을 다녀보았지만
단동보다 생활하기 좋은 곳 없다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 부르던
“강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의 가사가
“정말 그렇구나” 하고 재삼 확인시켜준 압록강의 살가운 바람과 풍경들~
마음속 무언가를 풀어버리고 싶어 찾아가면
더없이 맘 편하던 압록강 상류쪽의 河口~

가을이면 河口 가는 길에 널린
복숭아밭에서 갓딴 복숭아의 단맛은
어휘력이 부족하여 섣부르게 표현하면 복숭아를 욕되게 하고

이름도 모르고
재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먹었던
수백가지(?)의 중국 요리들 때문에 뱃살엔 기름기만 끼고

하구에서 배를 타고 북한 江岸에 바짝 붙어
수풍댐까지 올라가며 바라보던 북한의 풍경들은
우리의 삶속에 찌든 눈을 호강시키기에 그지없었고
봉황산, 오룡산, 천화산 등은 웅장함과 오묘함과 넉넉함 그대로이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건너다 보던 강건너 신의주
늘 살갑도록 정답게 대해주던 청류관의 평양에서 온 복무원 소녀들

언제 다시 허리띠 풀어 놓고 늘어지도록
각종 과일을 다시는 먹어 볼 수 없을 것 같은 섭섭함은 오래갈 것 같고
발의 피곤함을 날려버리고 싶으면
언제나 싼값에 지져분한 발 내밀 수 있었는데~

동틀 무렵 새벽과
저녁 먹고 난 여유로운 시간에 강가에 나가면 늘 볼 수 있었던
중국인들의 제기차기, 수건돌리기, 무도, 태극권, 태극검, 악기연주 등등 속에서
삶의 여유와 만족을 배울 수 있었음은
중국생활 중 얻은 값진 지혜 중의 하나였습니다

단동에서 정들었고 맛보았고 기억해야 할 이 모든 것들을
이사짐 속에 넣어 가지고 갈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내 생활에 충실했더라면
중국에 대한 보다 많은 지식을 얻었을 수 있었고
중국에 나오기 위해 노력했던 정성의 절반만 여기에서 쏟았다면
동시통역사(?)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한없이 게을렀던 내 자신을 비판하기에 너무도 부족합니다

4년여를 단동에서 지내는 동안
계획했던 곳을 미처 다 못 가보고
다음기회로 미루는 아쉬운 여유(?)를 부리기도 하면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그래도 꽤나 많은 지방을 다니며 중국을 눈에 넣어 두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만세를 부르며 바라보던 천지의 웅장함과
二道白河와 泉陽에서 올려다본
쏟아진다는 표현이 부족하기 그지없었던 생전 처음 본 듯한 밤하늘 무수한 별들

정말 눈을 감아도 미치도록 자꾸 떠올라
문득 문득 다시 가보고 싶은 욕망에 얽매이게 하는 九寨溝 산수들의 수려함

끝없는 사막과 아랍풍의 이국적 향수를 가슴 깊이 간직하게 한
新疆의 天山, 乌鲁木齐, 喀什, 库尔勒, 库车, 吐露番 등 여러도시들

이전에 보았던 나이아가라 폭포만은 못하지만
貴州省 黃果樹瀑布의 웅장한 물소리는 아직도 귀에 맴돌고

사실사철 봄이라는 말에 속아(?)
11월에 준비없이 찾아갔다가 비록 추웠던 기억에 추억 다 빼앗기긴 했지만
雲南省의 昆明, 大理, 丽江, 乡哥理那, 산야의 정감스러웠던 풍경들과
石林의 기암괴석
특히나 여강 古城의 야경과 고성 한복판을 흐르는 얄밉도록 어여쁜 개울들

甘肅省의 蘭州와 敦煌石窟과 모래산인 冥沙山
물색이 정말로 황색일색인 黃河江과
처절하도록 나무심기에 매달리던 헐벗은 산야

명성에 찌들어 크게 얻을 것이 없어 좋은 추억을 못 만들었던 黃山은
차라리 기암괴석에 피곤한지 몰랐던 張家界만 못했고

한국사람 대부분이 가보았다는 桂林과 西安
겨울 관광의 백미인 哈尔滨 빙등제와 일제의 잔혹상에 치떨리는 731부대
고구려 유적을 보며 조상들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려 했던 集安과 桓仁

차량을 가지고 일주(?)했던
山東省의 靑島, 烟台, 威海, 济南, 曲阜, 泰山, 東營

2001년 만리장성 회원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더듬으며
2번이나 다시 찾았던 牡丹江
10월의 눈 아프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고파 찾았던
러시아 국경도시 水分河에서는 영하 28도의 날씨에 차창의 성애만 보았고
손인숙 선생이 그리 자랑하던 吉林의 霧松

부평구와 자매도시인 葫芦岛
부평구에 파견나왔던 이제는 5살짜리 아이를 둔 어엿한 아줌마 된 周麗那가 살며
중국 최초 우주인의 고향인 水中縣

이웃집 드나들듯 다녔던 大連
유리창, 따사란 등 뒷골목이 더 좋았던 수차례의 北京 돌아보기
단동이 아무리 좋다해도
언제나 그리운 제2의 고향 天津

그리고는 上海, 折江省 湖州와 대나무와 白茶로 유명한 安吉
四川省 成都, 遼寧省 沈陽, 遼陽, 本溪 등등
일일이 되돌아 보려니 숨이 찰 정도로 많은 곳을 보았음은
다른 사람보다 선택받은 나만의 특혜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미적 가치나 미적 감상거리는 안되지만
조촐한 사진전이라도 열고 싶은 건방진 욕심도 있음은
아마도 교만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일에든 항상 아쉬움은 있기 마련처럼
아직도 가본 곳 보다 못 가본 곳이 더 많은 중국
그중에서도 延邊지방, 內蒙古, 西藏, 海南島에 대한 미련을 간직한 채
이제 중국땅에서의 생활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단동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에 대한 향수가 그리울 때쯤이면 때맞추어
여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끊임없이 위문 공연(?)을 와 주었던 많은 분들 때문에
새삼 사람사는 맛을 느낄 수 있었음은 큰 행복이었습니다

그긴 단동에 공.사적으로 단동에 찾아와
저와 한테이블에 숟가락을 놓았던 70여차례 손님 접대
그분들이 찾아와 주었기에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고
폭넓은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나와는 큰 인연이 없었음에도 기꺼이 찾아와 주셨던 분들
온가족이 함께 오셔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 주셨던 분들
좋은 호텔방 마다하고
불편한 우리집에서 한솥밥 먹고 한이불 덮으며 법석(?)을 떨었던 분들과의
단동에서의 만남으로 쌓았던 한순간 한순간의 추억들은
내게는 너무나 새로운 소중한 인연으로 가슴속에 각인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한번쯤 찾아 와 주시기를 바랬던 몇몇 분들이
끝내 단동 땅을 밟지 못함에 대한 서운함은
마음 한쪽 구석에 모진 아쉬움으로 남아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꼭 한번
그간의 신세도 갚고 새로운 정도 쌓고 싶었지만
모든 일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흔한 말로 위안(?)을 받으렵니다

이제
단동에서 사랑을 주었던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한국에서 우리를 관심있게 지켜봐 주며 걱정을 해 주신
많은 분들의 사랑의 눈빛을 고이 간직한 채
귀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합니다

이제 많은 걱정이 앞섭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망각을 동원해
단동에서의 좋은 추억에 대한 미련을 얼마나 빨리 잊을 것인가와

한국에서의 생활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다양한 두려움에 안정된 마음 둘 곳이 없음과
너무도 많이 변해 있어 적응하기에 버거울 현실들과
그리고
많은 분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지켜볼 매서운 눈초리들이 말입니다

한국에서의 빠른 적응과 안정된 생활을 위해
많은 분들의 사랑과 위로함과 격려와 따금한 충고와 채찍을 기다리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각별한 애정으로 지켜 봐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제 단동의 향수에서 속히 벗어나는 것만이
내가 삶아 남을 수 있는 각박한 한국의 현실임을
두려움과 겸허함으로 받아드리며

그간 3년 11개월 동안
단동에서의 생활하는 동안
많은 염려와 도움을 주었던 분들에게
진심으로 두손 모으고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새로운 삶의 현장을 찾아
정든 단동 땅과 그리운 분들을 뒤로 한 채
얼마나 걸리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한편으로는
저를 기다리는 더 많은 분들의 곁으로 가기 위해

이제 7월 6일 단동을 미련없이 떠나렵니다

그간 각별한 애정과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고
격려와 용기를 붇돋워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단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먹자판 났습니다  (0) 2012.02.24
[스크랩] 에미나이 동무들입네다!!  (0) 2012.02.24
청류관아이들(2)  (0) 2007.08.13
청류관아이들(1)  (0) 2007.08.13
10월의 마지막 날에  (0) 200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