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동이야기

10월의 마지막 날에

meiser 2007. 8. 13. 15:16
중국어로 맺어진 만남을
그간 소중한 인연으로 여기며 살아 오며
못다 나눈 이야기들을
소담스럽게 늘어놓을 여유도 없이
훌쩍 떠나오며 가졌던 아쉬움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습니다.

뜨거운 한 여름의 태양 볕을
머리에 이고 떠나 왔는데
어느새 초겨울을 알리는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이곳에 온지 두 달 반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니 무척이나 바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1주일도 채 안되어
감숙성 성도인 란주에 출장 가서
황하의 물이 정말 누렇다는 것을 확인했고
벌거벗은 황량한 모래산에
막대기 같은 알량한 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
적은 강수량(연 400mm 이하)에 나무 죽을까봐
산에 스피링쿨러를 설치하고
황하의 물 끌어다 나무에 물을 주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돈황에 가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그 유명(?)한 莫高窟도 보았고
몇 개의 석굴 천정벽화에
우리나라의 장구 치는 그림이 있음에 놀랐습니다.
북경에서도 비행기로 4시간 걸리는 곳인데
그렇다면
1,300여년 전에
이곳 사람들이 신라에 갔었다는 말인가?

무릎까지 빠지는 모래밭을 벌벌 기다시피 해서
鳴沙山(모래산)에 올라 내려다 본
반달 모양의 月牙泉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낙타상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낙타 등에 올라도 보았습니다.

陽關에 가서
봉화대에서 타오르던 봉화불과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로
뽀얀 먼지 날리며 달리던
병마들의 모습들이
눈을 감으니 선명이 떠 올랐습니다.

개방의 물결을 타고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산동성 동영에 출장가는 길에
청도에 둘러
총총이와 하루밤 지새우고
그도 아쉬워
동영시로 불러 여러 날을 같이 지냈습니다.

단동에서 승용차로 4시간여 걸리는
도시가 깨끗하기로 소문난
대련에도 두 번이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단동에서 13시간 기차타고
새벽 4시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두어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기차 갈아 타고 가기를 5시간 -
늘 다시 가고 싶었던 목단강에 가서
그리운 이들도 만나 보았고
2시간 반 버스타고
“수분하“라는 중국과 러시아 변경(국경)지역에 가서
난생 처음 본 러시아 땅도 눈에 담아 왔습니다.

13시간 밤기차 타고
두 딸 만나러 천진에도 물론 다녀왔고

부평구에 파견 나와 있던
섬머스마 같지만 여전히 순진한
李桐 만나러 호로도시에도 갔었고
호로도시에서 1시간반 떨어진
綏中懸에 가서 周麗娜 내외와 돌이 채 안 된 딸도 안아보고
물위에 축성한 만리장성(九口門)에 같이 올라
눈을 감으니
흉노족의 함성 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수중현에서 단동으로 돌아오는
7시간여의 먼 거리
중국인 기사 피곤할까 노파심에
귀공자와 짜고
억지로 운전대 빼앗아
심양까지의 칠흙같이 어두운 고속도로
4시간여 130여키로로 신나게 달리다
무식하게 고속도로 무단 횡단하는
멍청한 놈 피하던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이곳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모든 여건이 좋아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감스럽고 넉넉한 여유가 있어
한국 어느 자그마한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푸근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 어디서나 늘 보아왔던
푸른 산이 있고
유유히 흐르는 강이 있고
무수히 보이는 한글 간판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2,000여명이나 되는
조국(북한인들이 북한을 호칭)의 동포들과
이미 통일(?)을 이루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평양에서 온 북한 식당 복무원 아가씨들의
재치 넘치는 애교와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죽이도록 예쁜 노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여기가 어딘가 싶습니다.

길에서
상점에서
억센 이북 사투리에 고개 돌려보면
가슴에 빛나는(?) 수령님 사진에
처음에는 섬�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잠깐이면 헤엄쳐 건널 것 같은
강 건너(900여m) 신의주 땅이 바라다 보이는
압록강변을 걸어서
아침저녁 출퇴근하며 마시는 공기는
신선하다 못해 마음을 절입니다

6.25때 미군 폭격으로
절반이 잘려나간
압록강 철교에 올라보면
폭격 맞은 흔적이 역력하고
단교(斷橋) 옆으로 새로 건설한 다리위의
북한을 오가는 열차와
무역을 위해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의 행렬은
그저
한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에 불과합니다.

유람선 타고
5미터 정도 까지 접근한 신의주 강변엔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고
여름철이면 아이들의 멱감는 모습이
한국의 어느 시골 강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눈앞의 위화도를 바라보면
그 옛날
이성계가 회군하지 않고
요동정벌에 성공했다면
이 단동은 지금 우리의 땅일 텐데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너무나 초롱초롱한 밤하늘의 별 볼일이 있음이 너무 좋습니다.
별 보기를 무척 좋아해서
산골이나 시골에 가면 밤하늘을 꼭 쳐다보곤 했는데
흐린 날이 아니면
밤이면 늘 볼 수 있는 별들의 무리들이
맘 한구석에 숨어 있는 철없던 소년의 마음을 잠 깨워줍니다.

가끔 두어시간 차를 타고
압록강 상류로 올라가서 바라보는 북한의 산수는
비록 민둥산이긴 하지만 정겹기만 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던
수풍댐은 참으로 웅장했습니다.
상투적인
김일성 부자 선전문구만 없으면
더 좋은 풍경일텐데 -

망원경 속으로 보이는
조국의 인민들과 군인들의 모습은
의외로 한가롭고 평화스러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압록강 방가로에 앉아 먹는
진짜 자연산 메기 매운탕의 맛은 산수와 어울려 근사하고
한국에서는 비싸기도 하지만 귀해서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는 자연산 쏘가리회를
싼 가격에 쉽게 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압록강 상류에 널려 있는 복숭아 과수원에서
방금 따 온 복숭아의 맛은
아! 소리가 절로 나며
복숭아의 맛이 원래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해 줍니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복숭아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입에 넣자마자 맛있다는 소리가 바로 나오는
포도의 맛은 표현을 생략하겠습니다.

장 보러 시장에 가면
채소 잔뜩 사야
돈 10원도 안 넘고
비싸서 한국에서는 눈요기만 하던 과일들
부담없이 골라 담을 수 있고
아끼바리보다
여주 쌀보다 더 좋아 보이는
옛날 황제에게 바쳤다는
이 지역 東港쌀 때문에
허리춤이 자꾸 늘어 고민입니다.

중국인 직원들을
집으로 와서 요리를 만들어 먹자했더니
각자
요리 재료 한두가지씩 들고 와서는
이리 볶고 저리 볶고
중국 남자 요리솜씨 뽐내고 -
중국 직원이 사들고 온
싱싱한 게와 가재 삶아서
정성과 우정을 곁들어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두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사우나는
비록 교외에 있는 온천에서 탱크로리로 실어 온 물이지만
우리나라 어느 온천 못지않게 물이 좋습니다.
사우나에 있는 옥 찜질방에 들어가면
바닥과 천정 그리고 사방이 옥인데
아마도 우리나라에 있는 옥사우나의 옥은 전부 가짜가 아닌지 -
지저분하던 발이
몇 번의 옥찜질방 뜨거운 옥위에 올려 놓았더니
흉하던 모양이 사라졌습니다.

가끔은
피곤하다 싶어
돈 20원에 지저분한 두 발
씨아오지에의 예쁜 두 손에 맡기고
잠시 후 눈을 떠보면
그새 잠이 들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동안 찌들었던
삶의 찌꺼기들은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복잡하고 어수선하던 인천의 모습들이
머릿속에 점차 잊혀져 갑니다.

이제 단동에도
동장군이 찾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하이얗게 눈 덮힐
고즈넉한 산야들이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자못 궁굼합니다

한국에서는 집이나 사무실
그리고 차에 난방이 잘 되어 추운 줄 모랐는데
날씨가 추워졌는데도
11월 15일 안되었다고
난방주지 않는 무식한 중국인들의 횡포(?)에
그저 사무실이나 집이 온통 썰렁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내복을 입었는데
내복 사 온다는 마나님에게
호들갑 떨 필요 없다고 호통을 쳐 놓고는
건강을 위해 내복을 입어야 하는 실리를 택할지
아니면
아직껏 이 나이 먹도록
내복 안 입고 살았다는 긍지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을 택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방금 단동항에 내렸다는
통쉬에 여러분의 살겹도록 반가운 목소리가 담긴
느닷없는 전화를 받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아무 생각없이 연안부두에서 배를 탔는데
15시간의 항해시간이 지루할 것 같아 걱정했지만
맥주 한잔 들이키고
눈 잠깐 붙였더니 단동이더라고 하면서
잠자리
먹거리 걱정 않고
빈손으로 왔다는 황당한 전화를 말입니다.

가수 이용이 불렀던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래가 문득 생각납니다
오늘 저녁엔
한 달간 고생한 중국인 직원들과
백주잔이나 부딪쳐 볼랍니다.
글구는
웬만한 한국 노래 몽땅 있는 노래방에 가서
어깨동무 하고
10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고 -

별을 헤며
스잔한 초겨울 바람을
철지난 가을 잠바 옷깃을 쫑긋 세워 막으며
바지주머니 속에 깊이 넣은 두 손의 따뜻함을 붙들고
안타깝게도 불 빛 한점 볼 수 없는 강 저편 신의주 너머
먼 남쪽에 있을 통쉬에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떠올리며
터벅터벅 집으로 갈랍니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통쉬에 모두의 건강과
나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늘 빌어 줄
모든 통쉬에 가정의 행복을 시샘하며
죽은 자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인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모두들의 내일이 되기를 빌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몇자 적었습니다.

이천삼년 10월 하구도 마지막 날에
멀지만
생각하면 넘 가까운 단동에서

따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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