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비오는 날의 넋두리

meiser 2007. 8. 13. 15:10
어린시절 비오는 날
툇마루(?)에 배깔고 업드려
빗방울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땅바닥 물고인 곳에 빗방울이 떨어진 후
살짝 튀어 오르던 그 예쁜 방울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기억하고 싶은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망각이 품어버린
여린 추억들을
다시 돌려올 수 없는 안타까움에
덧없이 가버린 세월만 야속타 생각합니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빗방울 튕귀는 뜨락이 내려다 보이는
창넓은 카페에 앉아
헤이즐럿 커피향에 취해
복잡한 머릿속을 세탁하는 것도 색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
허기사
사는 근본이 혼미한데
세탁한다고 뭐 크게 달라지기야 하겠습니까
그저 남들이 보기에 궁상(?) 떨고 있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문득
등돌려 창 밖 운동장으로 향한 시선 속에
지난 시간 되돌아보니
마냥 내 곁에 머물러 있을 것 같던
강변의 모래만큼
많은 날들이
어느새
저 만치 멀어져 갔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저항 없이 밀리며
어디로
흘러가는 줄도 모르면서
흘러 가버린
수많은 모래알들처럼 말입니다

빗줄기 사이를 뚫고
멀리 던진 시선너머에 멈추어 서서
발끝 돋우며
길게 늘어뜨린 목으로 내다보니
글쎄
내가 종내 머무를 곳이
머지 않은 곳에 있음을 새삼 알았습니다

질퍽거리며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피곤한 심신을
잠시
풀밭 한가운데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누이고
음산한 하늘을 향해
한바탕 으스러지게 소리지르면
제법
사는 법이 손에 잡힐 것도 같은데 -

어느새
삶의 종착역은 벌써 희미하게 보이고
해야 했던 일들은 뒤로 멀어져 가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 지고
무엇인가 이루어야 하는데
보이지는 않고
자꾸 힘들다는 생각만 들지라도
꺽이고 꺽여도
제 스스로 태어나 새로운 순으로 이어지는
튼튼한 뿌리로 일어서는
마른 풀잎을 닮고 싶습니다

흔적없는 물거품 되어
강물따라
멀리 멀리 가버린
수북히 쌓였던 인생살이 이야기들을
되새김하느니
머무를 곳을 찾아
도도히 흐르는
삶의 저편에서
어젤랑 망각 속에 접어두고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에도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조각들을 꿰메며
잡초처럼
질기고 질긴
싱싱한 넉넉함을 익히며 튼튼한 뿌리로 우뚝 서고 싶습니다

밟혀도
가슴을 두드려도
아파하지 않는 북처럼
그렇게
그렇게 지내면서 말입니다


* 어느 비오는 날 강화도 장화리에 있는 해둥지에 앉아 있던 기분으로 써놓았던 넋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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