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광개토대왕비 숨막혀 돌아가시겠네!! (집안여행기)

meiser 2007. 8. 13. 15:01

단동에 근무하면서

맘속에 늘 가보고 싶었던 곳이 한 군데 있었는데

그곳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집안(集安)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곳에는 고구려 역사 유적이 많은 곳이고

중국이 역사를 날조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단동에서 집안까지는 하루에 한번 버스가 다니는데

소요시간이 8시간 정도 걸리고 버스도 작은 중바(中把)로 매우 불편하여

지도상으로는 가깝지만 쉽게 가게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단동에 온 이후 이제나 저제나 벼르다

단동시와 자매도시인 의정부시에서 공무원상호파견 교류 계획에 따라

단동 요동대학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있는 직원들이

11월 26일 교환근무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안을 꼭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귀국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원님 덕분에 나팔 불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심정으로

백두산 갈 때처럼 급해 집안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대중교통편은 불편하기도 하고 시간도 3일이나 걸려야 할 것 같아

고물차이지만 사무실 차를 가져가기로 하고

운전기사를 대동하고는 별 준비없이 떠났습니다


단동에서 집안으로 가는 길은 압록강 주변을 따라 올라가는 길과

환인을 거쳐 가는 길이 있는데

집안을 갈 때는 환인에 둘러 고구려 유적인 五女山城을 둘러보고

단동으로 돌아 올 때는 압록강 주변을 따라 내려오기로 하고

11월 5일 오전 9시반에 단동을 출발 했습니다


桓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였던 곳입니다

환인까지는 도로 포장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포장 상태가 나쁘고 길이 좁아 근 4시간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점심시간이 훨 지난 시장기가 가득한 배를 채우기 위해

환인 시내를 몇 바퀴 돌며 뭘 먹을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흔해 빠진 火锅집에 들어가 5명이 60원에 해결을 하고 나왔습니다


식사를 하고 난후 오녀산성으로 출발하였는데

산꼭대기에 항공모함처럼 솟아있는 오녀산성은

어디에서 보아도 쉽게 오녀산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녀산은 해발 820미터 인데 그 위해 다시 100여미터 가량의

절벽이 자연요새인 성벽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다 본 오녀산성>


 

오녀산성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이지만

철이 좀 지나서 그런지 산성 밑 주차장에는 차 한 대 없고

표 파는 곳에 물으니 차를 가지고 산성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관광객이 타고 온 차는 산성 아래 주차장에 주차하고

관리사무소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산성까지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산성입구에 다다랐지만 손이 시려울 정도로 바람도 불고 (아침 최저기온 영하7도)

산성을 돌아보는데 3시간이 소요된다는 매표원 말도 있고

40원이나 하는 입장료 내고 올라 가보아야 본전도 못 건지고

집안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적으로 불편 할 것 같아

사진 한 장 찍어 다녀왔다는 기념 흔적 남기고는

내년 봄에 다시 오마고 약속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녀산성 입구에서 흔적 남기기~>

* 맨 왼쪽 잘 생긴 친구가 운전기사 


환인을 출발하면서

운전기사를 공갈 협박(?) 하다시피 하여 운전대를 빼앗았습니다

사실 우리 기사 장거리 운전하면 금방 입술이 부르트는 등 티가 나거든요

해서 내가 매일 

“넌 운전기사이지만 운전하기를 좋아 하지 않는다”고 놀려 대곤 합니다


집안까지 가는 길은 도로 폭이 좁고 산속으로 길이 나 있어 정감은 있었지만

운전하기에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4시반 정도 되니 주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  

폐차 처분 직전인 차로 밤길 운전하기가 여간 아니어서

5시를 못 넘기고 두어시간 만에 다시 운전대를 기사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5시밖에 안되었는데 해는 저물어 밤 11시 12시가 된 것처럼 어둡고

산속 구불구불 좁은 길에는 인적은 커녕 차적(?)도 없고

마적이 나타날 것 같은 칠흑같은 분위기였지만

차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밤하늘의 별은

지난번 백두산 가면서 머물렀던 천양에서 보았던 별보다 더 많은 별이

말 그대로 하늘을 덮고 있어 무서운 줄도 몰랐습니다

차에서 내려 그 별들을 만끽해야 했었는데

아쉽게도 갈길이 어딘지 몰라 헤매던 터라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환인에서 집안까지 거리가 160여㎞라

거리로만 계산하면 2시간이면 족 할텐데

집안에 도착한 것이 저녁 7시경이니 4시간여 걸린 것 같습니다


30여분을 헤메고 숙소를 찾았지만 눈에 보이는 호텔은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초대소도 눈에 잘 안보이고 결국은 눈에 보이는 호텔에 들어가 물으니

자기네 말로는 집안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라나????

2성급 호텔인데

숙박비는 2인실은 150원, 3인실은 200원 이었습니다

젊잖게(?) 호텔 객실 샅샅이(?) 검색하고서야 방 2개 얻었습니다


사실 준비없이 오느라 여권을 안가지고 와서

투숙 거절 당하면 어쩌나(지난 2월 북경에서 경험했음) 했는데

다행히 집사람 학생증으로 해결 하였습니다

저녁은 호텔 찾으러 다니며 보아 두었던 한국식 불고기집 찾아 갔으나

한국식이 아닌 조선식(?)으로 대충 때우고

그 어느 때 지금의 호텔이 있는 지역에서 생활하며 내쉬었을

고구려 조상들의 숨결을 들으니 집안에서의 밤은 깊어 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 아침을 먹는데

반가운(?) 한국 여자들 목소리~ (단동훼리 타고 온 단체 여행객)

같이 다니면 입장료라도 할인 받을까 싶어 일정을 물었더니

한 뚱뚱한 아줌마 다른 동행자에게 왈 “같이 다니면 안되”라고 외친다

어디서 맨날 당하고 살았나?

아님 우릴 제비족으로 보나?

별 여자 다 있다 싶어 내가 대답하기를

“안 따라 다닐테니 걱정마시고 단동오면 연락하세요 좋은 곳 안내해 드릴께요”


호텔에서 어제 맡긴 야진 돌려 받는데

10원을 덜 주길래 왜 덜 주냐고 했더니

기가 막히게 주차비라나 ?

호텔에서 투숙객한테 주차비 받는 곳은 세계에서 여기 밖에 없겠다 !!

복무원에게 호텔에서 무슨 주차비냐고 신경질 내고는(내 중국말 알아 들었나 모르것네?)

어제 밤 생각해보니 호텔 앞에 주차하려니까

언놈이(?) 뒤에다 주차하라고 하더니만~

기어이 내 깨끗한 입에서 더러운 욕 나온다!!! (쓰 ~~ ㅂ)


호텔을 나와 광개토대왕비(중국인들은 好太王碑로 표기) 향했습니다

(※ 역사공부 잠깐 : 광개토대왕의 사후 시호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므로 광개토대왕을 好太王이라고도 호칭)

시내에서 10여분을 가자 유리벽에 갖힌 광개토대왕비가 나타탔습니다

주변은 온통 철망으로 울타리를 해 놓고

광개토대왕비는 훼손(?)을 막기 위해서인지 사방이 유리벽인 집에 갖혀 있었습니다

애고?? 

우리 광개토대왕비 숨 막혀 돌아 가시겠네(ㅉㅉㅉㅉㅉㅉ)

 

<광개토대왕비>


밭에서 보는 모습이나 입장료 30원 내고 들어가 보는 모습이나 그게 그거일거 같아

밖에서 사진 찍고는 장군총으로 향했습니다

장군총(중국인들은 將軍墳으로 표기)에 도착하여 보니

화강암 표면을 돌을 7단의 스텝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한 변 길이 33m, 높이가 약 13m 되는 사방형의 돌 무덤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장군총>


30원의 비싼(?) 입장료 내고 안으로 들어가

장군총 뒤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 내부로 들어가 보니

돌 널받침[棺臺] 두 개가 유리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장군총 내부에 있는 널받침>

 

 

 이 무덤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중국 학자들은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고

광개토대왕비 옆에 있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장군총 측면으로 10m 떨어진 곳에는 작은 돌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은 왕족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將軍墳1號陪墳이라는 안내판이 있었으나

그 훼손 상태가 아주 심하여 몹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군총 옆 훼손된 왕족 무덤>

 


장군총 위에 올라가서 바라다 본 사방은 모두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장군총 앞과 옆은 넓은 분지로 퍽 아늑해 보였습니다

사방 주변을 사진 찍고 싶었지만 날이 흐려 먼 경치가 선명치 못해 포기하고

장군총 앞에서 각자 기념 사진 찍고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시내쪽으로 나오다 광개토대왕비 멀리서 보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30원 입장료 내고 경내로 들어 갔습니다

가까이서 본 광개토왕비는 높이가 6.13m이고 둘레가 1.3m~2m로 참으로 웅대하였습니다

비문은 많은 부분들이 훼손되어 희미했고

일부분은 아예 그자체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중국 관광객 몇 명을 대상으로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마음속으로 “저놈 역사 왜곡하는 안내하겠지” 싶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를 지나 같은 경내에 있는 태왕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태왕릉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광개토대왕릉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태왕릉의 규모는 장군총보다 훨씬 컸지만

보존 상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태왕릉>

 

전문가는 아니지만 태왕릉을 사방으로 살펴보니

처음의 형태는 장군총 처럼 쌓았던 같은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맨 아래 부분만 화강암이 깔려 있고 나머지 윗부분은 그냥 돌무더기였습니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무덤 내부를 보니 장군총과 마찬가지로

돌로 만든 널받침[棺臺] 두 개만 유리에 덮여 있었습니다


이렇듯 훼손된 모습이 안타깝고

우리의 것 지키지 못해 중국넘(?)들에 의해 이토록 훼손되고

조상님들의 거룩한 유품 다 도굴 당한 것 생각하면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지네 것이라 우기며 이 모양으로라도 보존해 주니

한편으로는 중국분(?)들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태왕릉 내려오면서 돌 하나를 집어가지고 왔습니다

문화재 훼손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지만

“수십만 개의 돌중에 하나에 불과하고 ”

“돌무덤 쌓을 당시의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간직하고 싶은 애국심에 집어 왔는데 뭘”

“귀국하면 좌대를 만들어 잘 간직 하겠습니다”라며 대왕님께 양해를 구하면서 말입니다

 

<태왕릉 위에서 가져온 돌>

 

 

무너져 내린 태왕릉에 대한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집안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시내에 위치한 박물관은 아주 작은 규모로

두 개의 전시실에 장군총과 태왕릉 등에서 발굴한 많지 않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안내원이 유물들에 대해서 설명(물론 중국말)해 주었습니다


박물관을 나서며

이곳이 역사 왜곡의 현장이요 중심부인데

이 놈덜이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많은 세뇌(?)를 시킬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북진정책으로 영토를 넓혔는데

장수왕은 이곳 국내성(집안)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까지

남하 정책을 써서 이 만주벌판을 오늘날 중국넘(?)들이 차지하게 만들었는지

그런데 아직도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겠다는 무리들이~~

장차 만주땅 찾으려면 북으로 북으로 가야 하는데 남으로? 으~~~아!!!


다시 丸都山城을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환도산성은 궁궐터가 있던 장소로 최근에 발견된 곳인데

면적이 2,400평 정도 되는 곳으로

원래는 전쟁 등 비상시에 왕성 역할을 대신하던 방어용 도성이었는데

10대 산상왕(山上王)때 국내성에서 환도산성으로 천도해 왕성으로 삼은 곳이었습니다


산성입구에 다가서 보니 소문대로

뒤로는 3면이 높은 산에 막혀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

적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요새였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아야 전문가가 아니면 별 의미없는 궁궐터만 볼 것 같아

시간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돌아섰습니다


경주시 전체가 신라의 유적지인 것처럼

집안현 자체가 고구려의 유적지로

이번 방문길에는 시간관계상 대표적인 몇 곳만 보고

나머지 부분들은 다음기회로 미루었습니다

뭔가 아쉬움을 남기고 가야 다시 올 생각이 들테니까요

다음엔 완리창청 회원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겠죠


집안에서 단동까지 압록강 주변 따라 가는 길은

6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어 시간이 좀 늦은 듯 싶기는 하지만

집안을 떠나기 한번 둘러 보고 싶은 곳이 차를 돌렸습니다

그곳은 단동서 보는 북한과는 다른 이미지를 줄 것 같은 國門지역이었습니다

찾아간 곳은 압록강을 연결하고 있는 철교인 集安口岸이었습니다

 

<집안-만포 철교앞에서>

 


철교앞에 이르니 철교를 경비하는 군부대가 있고

초병한테 물으니 부대안 일층에 가서 돈을 내면 철교에 올라갈 수 있다 하길래

운전기사 보냈더니 1인당 10원을 내라고 해서

100원짜리 주었더니 거스름 돈 없다고 잔돈으로 달라고

군인 한놈(?)이 모자도 안쓰고 복장불량(?) 상태로 나왔습니다


철교에 올라보니 철교 끝에 북한 출구가 보이고

훤하게 바라다 보이는 북한 땅엔 왠지 모를 찬기운이 돌고

예서도 어김없이 산에는 선전구호가 보이는데

“김일성 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언제까지 저러고 살아야 하는지~~(ㅉㅉㅉㅉㅉㅉ)

 

<강건너 북한 만포지역 전경>

 

초병의 호위(?) 아래 철교 중간까지 가서 사진 찍고

집안 건너 북한 지역은 滿浦라는 곳으로

강 폭이 단동 압록강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단동에서 바라다보던 북한과는 또 다른 이미지를 느끼고 내려왔습니다

 

<철교 중간지점에서>

 

 

철교를 내려와서는

상류쪽으로 조금 올라가 보았습니다

10여분을 올라가 길에 차를 세우고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강 건너에서는 북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는데

빨래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소리 모아 “아줌마 빨래 하십네까” 하고 소리쳐 보았지만

소리가 안 들리는지 반응을 안 보이는 것인지 빨래만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강건너 빨래하는 아줌마(디카 줌을 최대한 당겨서 찍었음) >

 


강가에는 공장지역이 더러 보이고

집단 거주지역인지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획일적으로 들어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주택>

 

언제나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 느끼는 감정이 남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아버님 고향이 북한이고

47살에 요절하시기까지 매일 고향 이야기에 눈물 흘리시던 모습이 기억나

마음이 뭉클 합니다

“언제나 아버님 대신 저 땅을 밟아 보나??????”

"아버님 뼈라도 고향에 묻어 드려야 하는데~~!!!!"


시내로 들어와

만두 2종류와 魚香肉絲와 麻辣豆腐 그리고 米饭 3공기로 점심 허기 채우니

밥 값 22원 운전기사놈(?)이 어느새 계산해 버렸습니다


3시 남짓해서 집안을 출발했는데

단동에 도착하니 7시반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집안을 출발할 때 어두워질 때까지 내가 운전하기로 하고 출발 했는데

압록강변을 따라 달리는 경치가 꽤나 괜찮았습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때에 운전기사에게 운전대를 넘겨

어두운 산길 물어 물어 가며 단동으로 왔는데

어느 길로 왔는지 다음에는 역순으로 집안을 거쳐 환인을 갔다가

단동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집안은 무척이나 아늑한 곳으로

삼면이 산에 둘러 싸여 있고 한면은 압록강을 접하고 있어

우리의 조상들이 수도로 삼을 만한 매력있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고

학생들에게는 좋은 역사 공부 현장이 됨과 아울러

분단의 현장 공부도 될 수 있는 곳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와서 많은 지역을 여행 보았지만 

집안은 다시 한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샅샅이 �어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집안에 같이 한번 가보실 분 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