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들

그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meiser 2011. 8. 24. 09:25

 

오랜만에 후배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대구탕을 시켜놓고 막 한 숟가락을 뜨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뜨는 이름 석자 “진윤숙” 아주 반가운 이름이다

1999년 5월의 어느날 서울 대치동에서 만난 후 그간 전화통화는 여러번 했으나

2년전부터는 그나마 연락이 잘 안되던 여자 친구였다

표현을 여자친구라 하였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이는 나보다 한살이 많고

고등학교는 나보다 2년이나 먼저 다녔으니 누나라고 하는게 맞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냥 친구처럼 지낸지 벌써 근 40여년이 다 되간다


윤숙이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내 사무실 근처에 있는 병원에 모시고 왔는데

아버지께서 영양제 주사를 맞으시는 동안 점심이나 같이 할까 해서 전화를 했단다

그러나 나는 이미 펄펄 끊는 대구탕을 마주 보고 있으니 어쩌랴

해서 난 이미 점심을 시작했기에 점심후 1시에 근처 찻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윤숙이를 처음 만난건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였다

윤숙이는 당시 보기드문 명문가(?) 가정에서 자랐다

일제시대때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오셨고 어머니는 북경에서 공부를 하신분 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후 윤숙이는 나보다 한살 어린 내 친구로부터 짝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2살 연하의 동생으로부터 짝사랑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 교회에서 자랐다

윤숙이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내가 보기엔 짝사랑이 아니고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다

내 친구가 모든 것을 나한테 털어 놓는 아주 절친한 사이라 나는 내용을 넘 잘 알고 있다

당시 윤숙이의 고민하는 모습도 보았고

더욱이 그의 어머니께서 둘의 문제로 날 불러 의논을 하신 적도 있다


윤숙이 어머니는 우리가 가난하여 밥을 굶던 시절에

우리 어머니에게 혼자 아들 넷 키우는라 얼마나 고생하시냐며

10만원 (75년경이니까 꽤나 큰 돈이었다)을 주시며

과일장사라도 해서 아이들하고 먹고 살라고 배려해 주신 내게는 잊지못할 고마우신 분이다.

우리 어머니는 37살에 홀로되어 초, 중,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 넷 데리고

편히 머리 붙일 방한칸도 없이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면 고생하시던 차에

윤숙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돈으로 숭의철교 밑에서 길거리 노점 과일장사를 시작하셨다


윤숙이는 2살 연하의 남자로부터 짝사랑을 받았고 윤숙이도 내 친구에게 호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당시는 연하의 남자와 결혼은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지도 않던 시절이었고

더욱이 내 친구는 S대학교 재학하면서 운동권 학생이었고

당시 정보기간에도 수시로 불려 다녔고

그의 뒤에는 항상 정보기관에서 따라다녔고

윤숙이 조차 감시를 당해 한동안은 내 친구가 윤숙이를 일부러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한 현실에서 부모의 허락을 받아 사랑을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그들은 그냥 애만 태우며 야속한 세월만 보냈고

그 후 윤숙이는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가 되어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혼자 살아왔다


벌써 윤숙이 나이도 58세....

아무리 혼자 살았더라도 아마 할머니의 모습이 다 되었겠지 생각하고

급한 발걸음으로 약속된 장소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한 남자와 좁은 계단에서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계단에서 마주친 사람은 윤숙이를 짝사랑하던 내 친구 성일이가 아닌가?


성일이가 누구인가?

성일이와 나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자신과 동생을 낳은 후 가출하여 새어머니가 들어왔고

새어머니는 새로이 동생 둘을 낳아 그도 나와 같이 4형제였다

새어머니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계모 노릇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일이가 새어머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해 오히려 새어머니가 그를 어려워했다


어디 그뿐인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호적등본을 떼어 본 성일이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동생이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아

나를 붙잡고 밤새 울며 하소연하며 한때 방황하던 친구였다.

성일이네 가정은 아버님이 양복점을 경영하시어 다소 여유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잠자리 조차 좁아 불편하던 나는 수시로 성일이네 집에 가서 잠을 자곤 했다.

난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외로웠고

부모님은 계시지만 정을 붙일 데 없던 성일이와는

늘 서로의 현실에 마음아파 하던 친구 사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성일이는 재수를 해서 S대학교에 들어 갔고 나는 직장 전선으로 뛰어 들었다

대학에서 반정부 데모에 앞장서던 운동권 핵심 멤버가 된 성일이는

늘 자기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섭섭해 했고

나는 그의 이념에 반기를 들며 그에게 항변하는 사이가 되어

만날 때마다 이념의 차이로 많은 의견 충돌도 하였으나 우정은 변치 않았다


성일이는 대학 4학년때 당시 악명 높던 남산분실에도 몇차례 다녀오더니

사람이 바보처럼 되버렸고 결국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제적을 당하였고

그 후 성일이는 시민단체에서 반정부 인사로 활동을 하였고

가끔은 TV속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둘은 서로 만나는 것이 점점 소원해 졌고

근 20여년 소식이 귾어졌던 성일이는 어느날 수소문해서 나를 찾아왔다

20여년만에 만난 그의 모습은 나에겐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모습이 수척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도 더듬고 걸음도 겨우 내딛고 오른쪽은 마비가 있는 듯 했다

성일이는 뇌출혈로 쓰러진 후 몸이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성일이가 20여년 만에 찾아와서 나에게 하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너 윤숙이 누나 연락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전화번호를 좀 알려줘라”

그때 난 윤숙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1년전에 만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과거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난 윤숙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숙이 전화번호 모르는데~~ ”

“서울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

“윤숙이 부모님이 인천에 계시다하니 수소문 하면 찾을 수는 있을 거야" 라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그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윤숙이를 찾아달라는 말도 없이 돌아 갔는데~~~~아!!!


계단 중간에서 성일이를 만나는 순간 충격을 받은 나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는게 있었다

“그렇다면 둘이 같이 왔단 말인가??”

“그럴리가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을거야”

그런데 내 눈앞에는 성일이가 서있고

2층 탁자에는 윤숙이가 앉아 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너~~~ 성일이 아니냐? 오랜만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나는 그의 손을 이끌고 윤숙이가 기다리는 탁자를 향하였다

윤숙이는 출입구 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나는 윤숙이와 악수를 하고는

“우리 간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하면 안되지”하며 가볍게 포옹을 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윤숙이와 가볍게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도대체 이 친구는 어떻게 윤숙이와 같이 와 있는 것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으나 물을 수가 없었다

윤숙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성일이가 윤숙에게 “아버지 주사 다 맞으셨겠다. 모시러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데

이건 또 뭔 소리!!???

성일이가 윤숙이 아버님을 모시러 간다고???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가늠할 수가 없을뿐더러 머리에 쥐가 난다


작년에 윤숙이와 고등학교 동창이며 한 교회 다녔던 남희가

윤숙이 연락처를 물어왔던 일이 있어

“작년에 남희가 널 찾아서 전화번호 알려 주었는데 통화했냐?”

“아니 나 그동안 미국 언니네 다녀오고 해서 핸폰 일시정지시켰었는데 그때인가 보다”

순간!!

성일이가 윤숙이 전화번호 물을 때 모른다 했는데

남희에게는 알려 줬다 말하는 지금 나의 말에 성일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나 성일이는 다행이도 우리 둘의 대화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남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구 남희 누님 잘 지내슈?”

“그래 잘 지내는데 넌 어떠냐 어머니는 건강하셔?”

“어 우리 어머니 건강하셔 잠깐만 내 반가운 사람 바꿔줄께”

난 핸드폰을 윤숙이게 건네주었다

“남희야 나 누군지 알겠어? 나 윤숙이야”

두 친구의 대화는 한참을 이어지는데~


윤숙이가 뜸금없이 하는 말

“남희야 다음달 둘째주 토요일에 얼굴 좀 볼 수 있냐”

“나 결혼 한다”

“누구냐고?”

“너도 잘 아는 사람야”

남희는 누군지 예상을 못하는지 감이 잘 안잡히는 모양이다

“성일이야........!!”

순간 큰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하다


남희는 다소 놀란듯한 대화가 이어지고

대화의 마지막에 남희가 윤숙이 한테 하는 말은

“축하한다”가 아니라 “고맙다”였다. 그 말의 의미는 또 뭔가??


나는 윤숙이가 통화하고 싶은 또 한명의 친구 선옥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옥이 집 전화인데 통화한지 하도 오래되어서 바뀌지 않았을라나 모르겠다”

집사람이 알면 싫어할 이야기지만 선옥이는 나와 좋아하던 사이였다

선옥이와 나와 동갑이지만 나보다 중고등학교를 1년 앞서 다녔다

윤숙과는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중고등학교때 서로의 친구들 사이에도 애인으로 소문났던 우리는

내가 고3이고 선옥이가 대학 1학년 때

신포동 어느 제과점에서 만나 이제 그만 사귀자는 순진한 이별을 했고

그후 아무런 감정없이(조금은 거짓말) 한 교회에 다녔고

선옥이는 결혼을 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윤숙이는 선옥이와의 전화대화에서도

남희에게 하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성일이와 결혼하는데 와 줄 수 있냐?”

“양쪽 부모님과 형제들하고 조촐히 식사하는 걸로 결혼식 갈음하려고 하는데

옛날 같은 교회다니던 친구 몇 명은 꼭 초청하고 싶다”

초청하고 싶은 친구란 바로 나와 남희 그리고 선옥와 혜원이란다.

통화가 끝났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는 “아버지 주사 다 맞으셨겠다 모시러 가야 하는데~” 하는 윤숙이를 두고

나는 성일이에게

“너 혼자 가서 모시고 이리로 오면서 전화해라 그러면 바로 나가면 되잖아”라고 말하자

성일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래 그럼 나 혼자 가서 모시고 올께”하며 일어섰고

난 성일이가 나가기가 무섭게 윤숙에게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거냐?”


결론부터 말하면 둘이 결혼을 하기로 했단다

그렇다면 성일이는 35년동안 한 여인을 사모하던 짝사랑을 이제사 결실을 맺는 것이고????

윤숙이는 자신을 짝사랑(?)하며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살아온 성일이를 35년동안 기다려 준 것인가????

내가 연락처 모른다고 오리발 내밀었었는데 어찌 연락이 되었으며

성일이는 그간 나를 얼마나 야속하게 여겼을까???


윤숙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나한테 짝사랑하던 옛 여인의 연락처를 모른다고 박대 당한 성일이는

윤숙이가 서울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나 한테 듣고는

그날부터 서울시 전화번호부를 보고

교회 이름을 하나하나 컴퓨터로 조회를 하기를 2~3년.....

그러나 결국 성일이는 윤숙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윤숙이가 다니는 교회에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군가를 찾아야 했고

그 사람의 남편이 바로 성일이가 몸 담고 있던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윤숙이가 성일이가 과거 거기에 몸 담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는

성일이에게 도움을 받고자

성일이 연락처를 어렵게 수소문하여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물었으면 바로 알텐데 그때까지 난 윤숙이에게 성일이가 찾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연락처를 거절당하고

2~3년 인터넷을 뒤져도 찾지 못하던 윤숙이가 먼저 전화를 하다니

아마

성일이로서는 꿈인가 생시인가 했었을 것이다

처음 성일이를 만났을 때 성일이의 몸 상태를 본 윤숙이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성일이의 도움으로 교회 문제를 해결한 윤숙이는 그 후 몇 번 성일이를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성일이는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핸드폰을 잊어버려 다시 윤숙이와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윤숙이는 아무 생각없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숙이를 찾고자하는 성일이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는 윤숙이 동생이 교사인 것을 기억하고 그를 다시 찾아 나섰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다시 윤숙이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성일이가 윤숙에게 고백을 했다

“난 윤숙이를 다시 만난 이후 삶의 의욕을 찾았고 건강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데 나와 결혼하자”고

뇌출혈로 몸이 불편한데 교통사고까지 당한 성일이의 몸은 말이 아니었지만

윤숙이는 성일이를 만날 때마다 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일 모레면 나이 60인데 여태껏 혼자 살았는데 굳이 내가 몸이 아픈 성일이와 결혼을???”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얻을 때마다

윤숙이를 압박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사람을 구원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을 베풀어 하는 전도사로 이날 까지 살아왔는데~”

“삶의 죄절을 겪었던 성일이가 나를 만나 삶의 의욕을 느낀다는데~”

“나를 만난 이후 불편한 몸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가??~”

윤숙이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였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그리고는 결론을 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남은 생을 살아야겠다”고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의 손발이 되어 남은 생을 살겠노라”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고 성일이에게 결혼을 승낙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아버지 89세, 어머니 82세)의 허락을 받았다


그동안 성일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언젠가는 윤숙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충남 한 시골로 내려가 조그마한 농장을 시작하면서 윤숙을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결혼해서 농장으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양가 부모님도 다 모시고 내려가 살고 싶단다


결혼을 결정하고 성일이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간 날

윤숙이는 성일이 부모님께 자기가 남은 여생 편히 모실테니 시골로 가시자고 했단다

성일이 아버님은 연세가 91세로 당신 몸도 잘 가눌 수 없는 형편이고

성일이 어머님도 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서 생활하고 계셨다

성일이 아버님이 불편한 몸으로 손수 밥을 지으시며 어머니 병수발을 하시고 있는 상태이지만

성일이 아버지는

“우리는 여기서 그냥 살테니 내 아들이나 잘 보살펴 주라”며 거절하시더란다


결혼하고 나서 시골농장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겠다는 윤숙이에게

“나도 그 농장에 가서 살테니 내가 거할 땅 한 모퉁이 주라”고 농담하는 사이에

병원에서 윤숙이 아버님을 모시고 나온 성일이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성일이를 계단에서 만난 것은

윤숙이가 나 들어오기 전에 성일이에게

나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자리를 피해 달라해서

밖으로 나가는 도중에 계단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난 그들의 방해꾼이 결코 아니었다

질투도 아니었다

지난 날을 다 잊고 전도사로서 잘 지내는 윤숙이와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일이가 결혼을 했지만 몸이 아파 이혼을 한 것을 모르는 나로서는

서로에게 고통을 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성일이에게 윤숙이 전화번호를 안 알려준 것이고~~

윤숙이에게는 성일이가 찾더라는 이야기를 안 한 것인데~~


결과가 이렇다면 난 둘 사이에 무어란 말인가??

내가 윤숙이와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며

“니 어머니께 이렇게 결혼 허락하실 건데 그때 왜 반대하셨냐고 물어야겠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말이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결혼식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당초 양가 가족끼리 조촐히 모여 식사나 하는 자리인줄 알고 간 나는 의외였다

아름아름 소문이 나서 어쩔수 없이 주변에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낼모레면 60이 되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는 기분은 묘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성일이에게 시선을 고정시킬 수 없었다


윤숙이의 말에 의하면

성일이는 내가 윤숙이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안 알려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더란다


결혼예배가 다 끝나고 신랑신부의 행진이 마지막 끝자리에 다달았을 때에

나는 남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 팔로 두 사람을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윤숙이의 대답은

“야 양복에 화장 묻었어?”라는 말이었다

난 양복에 묻은 화장 자국이 훈장처럼 자랑스러웠다


결혼식이 끝날 무렵 도착한 남희는

기념촬영을 거의 마친 윤숙이를 붙잡고 “고맙다(???) 축하해”하며 울먹였다

윤숙이는 오히려 담담히

“나도 안 우는데 니가 왜 우냐?”고 남희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도 슬그머니 돌아서 눈가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결혼식에 참석하신 윤숙이의 아버지는 걸음걸이도 어려워 가족이 부축을 해야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입원중인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급히 가셨다

췌장암이란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는데 본인은 모르신단다

난 윤숙이에 한마디 했다

“윤숙아 너 효도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 보여드려 다행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들 떠나고

난 마지막으로 집사람과 함께

성일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강원도로 떠나는 그들을 주차장에서 배웅했다

“아버님이 병환으로 입원중이라 멀리 갈 수가 없어 동해안이나 가서 바람이나 쏘이고 오겠다”며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에 난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날 새벽 예배에 간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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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윤숙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희하고 선옥이 연락해서 이번주 토요일 밤따러 와라 추석전에 따야 하는데~~ ”